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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임서방 그늘에서 살아야 하나봐요“”나는 아직 임서방 그늘에서 살아야 하나봐요“ 친애하는 나의 쏭언니의 말이다 하루3시간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쏭언니는 첫 달 월급 108만원을 받아보고 허탈하고 기가 막혔다고 한다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라는 자괴감에 속이 상했다고......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수치화 할 수 있는 것은 치사하고 냉정하지만, 내가 얼마의 돈을 만들어내는 사람인가이다 더구나 스무살이 훌쩍 넘은 쏭언니의 두 딸들이 하는 말은 ”엄마! 엄마도 알바만 하지 말고 취직해 아빠만 평생 돈 벌고 힘들잖아 엄마도 이제 취직해서 3시간이 아니라 풀 타임 근무하고 200,300 월급 받아. 막내는 내가 돌봐도 되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면 혼자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 “ 학원에서 교회에서 차량을 운행하는데도 굳이 언니가 등,하교 픽업을 한다. 이유는? 간식을..... 먹여야 한단다. 쏭언니의 최후의 보루였다 초딩 막내 딸 핑계도 슬슬 끝이 나 간다. 사실 그 핑계는 이미 끝난지 오래다. 쏭언니가 부득불 붙들고 있는 줄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 아무도 그 야무진 막내를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씩씩하고 당돌해서 쟤는 뭐라도 하겠다고 혀를 내두르는 아이를 두고 언니는 방패 삼고 있으니, 어린 막내가 가엾은 건 쏭언니 한명 뿐이다. 그러니 막내는 여리고, 안쓰럽고,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어야 하는 것이다. 본인이 붙들고 있는 것이 막내가 아니라 세상에 나갈 자신이 없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어이 방패를 삼고 있으니 우리가 안쓰러운 건 막내가 아니라 쏭언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는 그 막내는 쏭언니에게만 문제가 많다 얘가 독해력이 없고 집중력이 없고 이해력이 약하고.....눈물을 글썽일 정도다 하아...얘처럼 눈치빠르고 당찬 아이를 두고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나 이제 막내 맡기고 하루종일 일해서 돈 벌고 싶어졌다고 말하던 기세는 2주일만에 수그러들었다 ”나는 아직 임서방 그늘에서 살아야 하나봐. 막내도 아직 어리구...“ 육아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대다수의 포커스는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양상들 중 문제를 삼는 부분은 그 양육자의 관점에 따른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나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이를 문제삼아 보고 있는 나의 생각을 관찰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아니라 나의 관점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내가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아이는 연약하고 불쌍한, 보호를 해도 해도 모자란 존재로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세상을 즐겁고 유쾌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더 많이 도전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행하는 놀이터가 될 것이다 나의 주의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집중’이다 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양상이 달라진다 주의를 집중해 고정시키면 그것이 신념이 된다 attention [주의.주목, 관심] 의 어원은 뻗다 tent에서 왔다 at 접미사가 붙어서 ‘어디에’ 뻗칠 것인가 즉, 나의 주의를 어디에 뻗을 것인가 나에게 무엇을 ‘지각’하게 할 것이냐 지각하는 것을 조절하는 것은 이미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살고 있다 수많은 광고와 마케팅이 그것이다 ‘침대는 과학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무엇을 규명지어주면 그것에 주의가 담기고, 그렇게 된다 내가 주의집중하고 고정시킨 생각이 신념이 된다 신념의 특징은 내가 만들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랫동안 습관처럼 이루어진 생각이라서 보이지 않아 인지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있지만 투명해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투명한 신념을 한겹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는 신념체계안에서 산다 옳고 그름은 없다 신념은 쉽게 만들고, 쉽게 지울수도 있음을 알게 되면 어우러져 함께할 수 있다 마음의 평화는 간절히 기도하거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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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카톡 대화1 카톡 대화2 “엄마, 나 반장 떨어졌어 집에와서 울고 있었어” “나 부반장 됐어 초등학교랑 달라 부반장 선거 따로 안해 그냥 2등이니까 부반장하래 선생님이 그래서 2학기때 반장 못나가 그래서 내일 그만둔다고 얘기할까 고민중이야” “엄마, 나 어느 고등학교 갈까? 아 오빠가 자꾸 놀리잖아 자기는 내 나이때 과고가려고 벌써 결정하고 준비했다고 나보고 어디갈건지 생각도 안했냐고 아 너무 재수없어!” “엄마 학원 선생님이 나보고 외고가래 오빠처럼 근데 나는 영어 싫어 단어외우고 하는 거 너무 귀찮아” “엄마 일차방정식 할 줄 알아? 나 이번에 수학에 반했잖아 일차방정식 배우면서 아니이~~이게 알고나니까 너무 아름다운거야~” “엄마, 나 반장 왜 하려고 했었는지 알아? 반장이 되면 학생부 점수가 있어 0.5점 부반장은 0.3점이야” “엄마, 나 방송반 떨어졌어ㅜㅠㅠ 그래서 또 울었어 아 인생 참 쓰다 이번주 내내 학교만 끝나면 집에서 혼자 울고이쌰 나 수분부족 됨” “다른 동아리 하고 싶은거 없었는데 꼭 1개는 들어야 된다고 해서 ‘또래 상담사’ 그거 신청했어 그게 제일 인기가 없어서 자리도 남았고 그게 봉사점수도 받고 뭐도 받을 수 있거든 일석이조 같은거야” “엄마, 나 수학시간에 퀴즈 맞춰서 점수 땄잖아 3명만 받는건데 내가 무려 2등을 했어 박수~~~ 나 학생부 점수 벌써 몇점 될걸?” “엄마, 나 어느 고등학교 갈까? 엄마 나 여상 갈까? 나? 돈을 빨리 벌고 싶어” "엄마아~~ ........" "엄마? ........." "엄마! ........" 보통 여자 아이들은 7세가 되면 글에서 ‘나’라는 표현이 시작된다고 한다 드디어 자아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는 나이다 그 전까지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자연인에 가까운 상태인 것이다 물론, 남자아이들은 훨~~~씬 늦다 12세가 넘어야 한다 ^^;; 18살인 고2 오빠가 아무것도 모르고 14살 중1이 된 동생에게 나는 니 나이때 이랬다 저랬다 뻐기는 이유다 아이는 내 예상보다 자기 삶에 대해 진지했고 계획적이었고 충실하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단지 이것뿐이었다 내 생각대로 키우면 고작 나처럼밖에 되지 못하니 내 계획과 틀에 아이를 끼워 넣지 말아야지 넓은 세상에 풀어놓고 키워야지 아이의 가이드가 일개 부모일 뿐인 내가 아니라 세상이 아이의 가이드가 되기를 자기의 철학과 기준을 스스로 세워가기를 그것이 아이를 인도해줄 것을 믿었다 아이가 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나를 뛰어넘는 삶을 살기를 믿어주고 나는 뒤로 물러난다 주인공이 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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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총량의 법칙.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대나무숲이 있어야 한다 한없이 무너지고 싶은 날 무슨일이냐고 아무것도 따져 묻지 않고 피상적인 위로나 격려 따위 없이 아무 설명 없이 무너져도 괜찮은 곳, 그런 곳 그 앞에서 무너져 펑펑 울고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툭툭 일어날 힘을 얻는 그런 곳 며칠 전, 이유 없이 마음이 조급하게 쫓겨 오갈데를 모르더니 점점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장악해가고 있었다 한두시간 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예감에 어딘가 알리고 쏟아낼 곳을 급히 찾았다 부모님은 걱정하실테고, 가벼운 친구들은 놀랄 것이고, 쎈 캐릭터의 친구들에게 불안 따위 말해봐야....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단번에 알아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위로나 격려 따위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가타부타 설명없이 쏟아내도 안전한 곳 10년 가까이 이어온 모임이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느슨하게 나를 늘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모임이었다 근래의 소식은 대략 알고 있으니 내가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알아 들어줄 사람들 그리고 반드시 나를 일으켜 줄 사람들 “지난주부터 이상하게 우울하네요... 일은 계속 열심히 하고 있고 그래서 체력도 확실히 좋아졌는데 불안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불안한거 아닌거 같은데 그냥 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뭔가가 두려운거 같고 두렵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막 눈물도 나고.... 엄마한테 말하면 걱정하실거 같고 유일한 친구는 쎈 캐릭터라 우울 따위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히고 그냥 우리 톡방에라도 올려놔야 될 거 같아서 갑자기.....별 일 없겠죠? “ 툭 써놓고 나니,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두려웠던 그 무언가 해소되면서 갑자기 천근만근이던 몸이 가벼워져 어이없게도 몇 주씩 미뤘던 집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참지 말고 풀어가며 하라며 우울해도 되고 참지 않아도 된다고.... 힘들면 징징대도 된다고 이 나이를 먹도록 아직도 단단하지 않고 약한 내가 나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남들에게 짐이 될 것만 같은 수치심에 힘들어도 괜찮은 척, 명랑한 척 하고 지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덜자란 어린애인 것을..... 들키면 안되는 줄 알았다 나만 빼고 다들 어른 같고, 다들 강한 것 같아서, 약한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 였다 아니었다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나보다 단단해 보이던 그들이 사실은 누구보다 지금 나의 시기를 치열하게 견뎌온 사람들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어설픈 위로나 충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대신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다 ”하나씨 내가 옛날에 얼마나 진상이었는지 얘기 했었죠? 난 3년을 했다구요 사람들이 나를 싫어서 안 만나려고 할 때까지 다 했어요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풀리더라구요 난 3년은 해야 풀리는 애였어요“ ”나를 액받이 무녀라 생각해요 나한테 다 던져요 난 괜찮아요 나도 예전에 주위 사람들 전부에게 던졌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저는 알아요“ ”언제든 와요. 같이 밥 먹어요“ 지랄총량의 법칙. 지랄은 다 해야 끝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걸 다 견뎌줄 맷집이 있는 사람들 그들이 대나무숲으로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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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전남 최초’ 난임 시술 원거리 교통비 지원 실시진도군이 관내 난임부부를 대상으로 난임 시술을 위한 병원 방문 시, 원거리 교통비를 지원한다. 대상은 진도군에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는 2024년 1월 이후 난임 시술가정으로, 1일 최대 5만원, 최대 10회까지 지원 가능하다. 진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난임시술 의료기관은 광주광역시에 소재하고 진도에서는 왕복 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군은 난임부부의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난임 시술 원거리 교통비 지원은 전남도내에서 진도군이 최초로 시행하는 사업이고, 임신을 원하는 난임부부는 소득에 관계없이 시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진도군 보건소 관계자는 “관내에 난임 시술 의료기관이 없어 임신을 원하는 난임 부부들이 광주까지 가야하는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원거리 교통비 지원 사업을 실시한다”며 “난임 부부 원거리 교통비 지원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과 난임부부의 임신 성공률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진도군은 임신‧출산‧육아 통합지원센터 조성으로 ▲생애초기건강관리사업 ▲영양보충사업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업 ▲보배섬 엄마 모임 등 다양한 모자보건사업과 출산장려지원정책을 확대해 임신부터 육아까지의 통합(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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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남자 없어?"“엄마는 남자 없어?” 하마터면 크게 한 입 베어물었던 크림새우를 뿜어낼 뻔 했다 엊그제 졸업한 초딩 딸래미랑 중학교 교복을 맞추고 밥을 먹던 중이었다 서로 배가 고파 주문한 짜장면과 짬뽕을 맛있다 연발하며 코를 박고 먹고 있는데 뜬금없이 다 큰 엄마를 보며 한다는 말이 “엄마는 남자 없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차마 가릴 틈이 없었다 ‘아 내가 오늘 너무 형편없어 보여서 그런가? ’ 시댁에 갈 땐 제일 후진 옷, 친정갈 땐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더니 딸래미 만날때도 해당되는 말인가? 엄마가 나 말고도 좀 행복하게 만나는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딸파심 같은건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크게 한바탕 웃었다 “엄마 오늘 너무 없어보이니? 너무 급하게 나오긴 했어. 엄마 오늘 너무 피곤했거든” “아니~~혼자 지내는 거보다 남자 친구도 좀 만나고 어? 이런것도 같이 사 먹고 어? 그러면 엄마가 좀 더 즐거울거 아니야” 벌써 엄마의 행복을 걱정할만큼 큰거야? 순간 다른 의미로 너무 안심이었다 아 알고 있구나 이 아이가 알고 있구나 이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얘가 아는지 모르는 지 물어볼 수도 없고 모르는 체 하느라 ‘이건 숨기는 걸까? 배려하는 걸까?’ 잔신경만 쓰고 있었는데 딸래미는 질문하나로 일거에 나의 걱정을 제거해주었다 알고 있구나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을 했고 나에게는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했어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시간들을 무언의 말로 잘 받아들였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다 키웠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 내 몫을 다 마친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엄마가 꼭 아빠랑 살지 않아도 돼 나도 이제 알만큼 알거든 엄마는 멋지게 엄마의 삶을 살아 나도 이제 내 삶의 평범한 시간으로 돌아갔어’ 라는 말로 치환해서 들리기도 했다 엄마의 연애사를 묻는 걸 보니 그렇다면 이제 너랑 나랑 연애 상담 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겠다 곧 너의 남자친구얘기, 짝사랑 얘기, 너의 친구 얘기인 척 말하는 너의 얘기들도... 그런 순간을 상상하니 잠시 짜릿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울 너의 연애 이야기가 처음에 얼마나 아프고 쓰릴지 얼마나 낯뜨거울지 모를, 80살까지 하게 될 너의 이불킥 사연들도 다 들어볼 수 있으려나 그 여러 과정들을 거쳐 성숙한 사람 성숙한 연인이 되어 멋있게 성장할 너의 미래가 순식간에 그려져서 애미는 혼자 몰래 웃었다. 내가 갖지 못한 순간들 엄마와 나누지 못했던 시시콜콜한 나의 짝사랑 이야기, 연애 이야기 언니도 없으니 더더욱 혼자 알아서 해야 했던 멘땅에 헤딩하듯 오롯이 혼자 겪어낸 나의 서툰 연애 스토리들 그런 순간을 너에게 주고 싶다 조잘조잘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복잡다단한 섬세한 감정들에 같이 공감하고 웃고 울어줄 그런 순간들 “엄마는 왜 갈수록 예뻐져?” 너무 느닷없는 솔직한 고백공격을 듣게 될지 몰랐던 오늘은, 행운의 날인가?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인연은 다 지나가고 흘러가는 거니 연연할 필요가 없다라는 얘기를 하다가 “엄마 그만~! 지금 엄마 '꼰모' ” 꼰모 “응? 꼰모가 모야? '꼰'은 꼰대 맞는거 같고...” “꼰대 모먼트” 아!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못 참고 그만 터져버릴 것만 같은 너의 순간이 오면 언제든 엄마를 찾아오렴 너의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엄마가 모두 품어줄게 네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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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나 낳았을때 마음이 어땠어?엄마가 그랬다. “그래도 니 낳고는 서울로 살림 날끼라고 엄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때는 지인~짜 좋았어” 그 말 덕분인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속으로 엄마와 정말로 화해가 된 건. 내가 엄마한테 행복함을 주었다는 사실. 사실은 내가 엄마에게 그렇게 귀찮고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 나를 낳고는 그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살림을 날 거라고 좋아하는 젊은 엄마가 떠올랐다. 그 시점에 태어났을 뿐인 나를 복덩이라고 의미를 덧붙여 더 좋아했을 엄마가 보이는 것 같았다. 곧 이사를 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30대의 젊은 새댁이었을 우리 엄마. 딸이라 그런지 더 예쁘다라고 말하며 웃고, 행복해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그만 황홀해졌다.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도 있었구나. 그래, 어찌보면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이 많았겠구나.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며 마음이 행복하고 흐뭇한 걸 보면... 아빠 때문에 구겨지고 힘들어진 엄마 마음 한편엔 그래도 내가 늘 사랑스럽고 예뻤겠구나. “하이고~니는 좋은 일만 있었어. 시골 내려올 때도 그래. 니 고1 때니까 사춘기 아이가. 어디 다른 시골, 머 강원도나 전라도나 이런데서 온 것도 아니고 서울에 살다가 그 시골로 이사를 했는데 싫다 소리도 안하제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니까 엄마는 고마웠지. 그라고 2학년땐가? 반장도 안 했나. 아, 2학년, 3학년 두 번 했나? 그 봐라~. 전학가가 반장 2년 동안 하기가 쉽나~ 대학도 특차에 한 번에 안 붙었나. 그것도 국립대. 엄마가 하도 국립대 아니면 안 된다고 세뇌를 시켜갖고 니가 그래 안 됐나 ㅎㅎ. 그 때 경북대를 갔어야 되는데. 그 때 넣었어도 아마 됐을거야. 그치? “ “우리가 할머니 집에 모시고 십 몇년을 살았는데 니 방 창문 열면 베란다 아이가. 그 베란다 쓰레기통에 할매 기저귀 땜에 똥 오줌 냄새가 방에 그렇게 진동을 하는데, 니는 참말로 냄새난다고 불평도 한마디도 안하고.... 여름 되마 방에 창문도 몬 닫고 냄새가 진동을 할 낀데도 한 번도 냄새난다고 소리를 안하드라고. 그 때는 참말로 엄마가 미안하드라. 한창 여고생이 깔끔 떨고 유난떨고 할낀데, “ 그 때쯤 목이 메었던 거 같다. 아......엄마가 아는구나. 맞아.... 냄새 많이 났었지. 그래도 그냥 그렇게 사는 건줄 알았지, 난 불평할 꺼리라곤 생각 못 했는데...그래서 난 원망하는 건 없었는데.... 엄만 그런 것도 하나하나 고마웠구나... 추억은 웜홀 같다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때의 시간 그때의 나로 한꺼번에 빨려 들어간다고... 엄마 얘길 들으니 그 때 할머니 기저귀 냄새가 다시 난다. 난 싫지 않았는데. 냄새라고 못 느꼈는데.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좋은데. 난 오히려 그립다 할머니 냄새. 드시는 약 때문에 약간 병원냄새 같았던 할머니 기저귀 냄새. 그 때의 엄마는 대학생인 오빠와 고등학생인 나까지 자식 둘에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그저 살기에 바빴고, 감수성 예민한 그 때의 내게 그 공허한 간극을 메꿔주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있어서 난 그나마 좀 포근했는데.... 그래서 그건 나에게 냄새가 아니라 추억같은건데... “엄마, 나 태어났을 때 엄마 마음이 어땠어?” 라는 질문 하나로 행복한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 나의 탄생이 부모에게 소중했다는 얘기가 나의 자존감을 한꺼번에 쑤욱 올려줬던 것 같다. 나의 존재는 부모로부터 왔으니까. 그 당연한 진리가 부모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서울로 살림을 나 희망에 찼던 젊은 새댁이 신랑과 재미지게 살기까지 했다면, 나는 “재수없다 저리가라.” 라는 모진 말이 아니라 “엄마가 너 낳고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 라는 달콤한 말들을 진작 듣고 살았을텐데, 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였구나... 나 사랑스러운 아이 맞구나! 라는 생각에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오늘따라 목울대가 왈칵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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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할 베짱농담할 베짱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 - 임재범 ‘살아야지’ 中 줄곧 모범생 비슷하게 적당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다 공부는 곧잘했고, 반장도 서너번 해봤고 국립대에 특차로 합격도 해봤다 전공은 딱히 적성에 맞지 않았으므로 결론은 자연스럽게 취집(취직+시집)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와 무난하게 결혼해서 아이도 둘을 낳았으니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로 마무리 되는 삶인 줄 알았다 이렇게 적당히 외줄타기하면서 ‘나’를 연기하며 사는 게 인생인가? 삶은 이게 다인가? 하며 살았다 시련이나 불행은 남의 것인양 곁에 오면 묻기라도 할 것처럼 깊게 공감하지 못한채 사소한 두려움으로 살았다 그럴 수 있었다. 결혼전에는 부모님께 결혼후에는 남편에게 나의 생사여탈권을 적당히 남겨놓고 내 할 일은 적당히 하며 살았으니까 그 때는 누구나 나를 간섭하게 두었다 그 간섭이 싫을 때는 때론 물러나고, 때론 숨으면서도 얼마든지 간섭하도록 말이다 책임만은 면하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친구의 고민상담 같은, 인생의 고통의 장면을 멀리서 보던 때에 느껴지던 두려움은 남편이 혹은 부모님이나 가족 누군가가 해결해 줄 것만 같았고, 누가 도와줄 것 같은 치사함과 닮아 있었다. 세상은 험하고 ‘넌 아직도 모르고 있는 일이 더 많다’ 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 덕분에 내가 그렇게 문제 해결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 잘 알고 있어서 일까? 책임을 모두 내게 가져오는 건 너무 고된 일일 것 같아서 최대한 미루고 미뤄왔었다 삶은 공평하게도 그런 나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막상 내게 닥쳐온 삶의 현장은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한번에 무너질 수가 있어?‘ 였다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왜 내게 이런일이.....라는 문장쯤은 단숨에 떠올랐다 어떤 사건이 누굴 골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 알 나이이면서도 말이다 마치 내게만 닥친 시련처럼 암흑과 적막속에 혼자 갇힌 것 같은 느낌과 공포를 마주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빡빡하고, 하나도 우습지 않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듯 맥박이 빠르게 뛰는 일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울수도, 누군가에게 고민상담하듯 가볍게 말로 꺼낼 수도 없었다. 식욕이 다 뭐란 말인가 그렇게 잘 먹던 내가 입에 뭘 넣고 싶지가 않았다 수시로 멍해지고 죽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덕분에 머리숱은 엉망으로 빠지고 체력이 바닥나서 힘 쓴 것도 없으면서 종일 누워서 끙끙 앓아댔다 내가 웃어도 되는 걸까 라는 자책은 늘 마주했다 죽을것 같은 그 시간들도 결국......... 흘렀다 시간은 감사하게도 애쓰지 않아도 흐른다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던 어느 날, 마음에서 결연하게 떠올랐다 ‘할 수 없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죽지 않고 살거라면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책임지고 살자‘ 오직 내 몫이었다.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함부로 내 짐을 덜어줄 사람을 찾아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너무 고독해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내 짐을 덜어줄 누군가는 없는 일이구나를 완전히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혹여 내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내 짐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내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거구나를 알게 됐다 그 뒤로 내게 들려오는 말들은 이러했다 “당신이 이 문제를 겪는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마음이 놓일 것이다” - 마이클 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 죽어야 될 고민은 없어” - phj (우리엄마다)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 - 임재범 ‘살아야지’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견뎌보니 괜찮더라 살아야 갚지 않겠니 ” - 노라조 ‘형’ “난 상관없어 위험해도 그건 내 몫이야” - 옥주현 ‘나는 나만의 것’ " 시간이 남아 있다 나를 가꾸고 소중함을 찾을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다" - 마이클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이 순간이 곧 삶이니까" - 영화 <언페이스풀> “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유머humor’ ”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어차피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이 시련이 내게만 있는 것 같은 착각 내 시련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 같은 착각 삶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단박에 웃게 해줄 수 있는 그 농담 한 문장 찾아 내는 것이 전부다 그 농담을 던지는 베짱 정도만 장착하면 된다 그러니 그렇게 심각할 것 없다 죽으라는 고민은 없다는 엄마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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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소는 정신적인 일이다오랜만에 간 친정집은 언제나 그렇듯 늘 그대로다 깔끔하게 정돈 돼 있고, 살림은 늘 간결하다. 하지만 군데군데 손대지 않아 먼지가 쌓여있고, 씽크대 손 닿는 곳에 기름때도 껴 있었다. 그걸 놓칠 우리 엄마가 아닌데.... 겹겹이 쌓인 살림살이 구석구석이 내 눈에 보이는 건, 가게 때문에 바빠진 엄마가 집에 오면 피곤해서 아무도 없는 집안의 살림따위 등한시하기 시작한 덕분일까? 나도 나름 10여년차 주부라고 눈에 띄인것일까? 어쨌든, 정돈은 항상 되어 있으니 먼지나 털어내고, 청소기나 돌리고 씽크대 기름때나 한번 닦아내면 그만일 일이었다. 슬쩍 일어서서 앞치마를 둘러 메어 본다. 청소기가 어디있을까나~있을법한 곳을 몇 군데 보니 역시나 거기에 있다. 정리정돈은 하여튼~ 청소기를 꺼내다가 바닥을 쓸어내다 보니, 정말 청소는 한참을 손 대지 않으셨나 보다. 구석구석이 사람 사는 곳만 피해 먼지가 적잖이 밀려나와 있었다. 청소기만 한바탕 돌려도 정돈 잘 된 친정집이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것 같다. 정돈이 잘 돼 있어서 걸리적 거릴 것도 없고, 구석구석 참 청소할 맛 나는 집이었다. 시집 오기 전에 살땐 그렇게 구조가 맘에 안 들었던 친정집. 널찍하지도 않고, 뻥 뚫린 것도 아니고 저층이라 어두컴컴한 친정집이 별로였다. 지금 다시 둘러 봐도 달라진 건 없는데, 왜 그럴까? 애들 살림이 없어서 그런가? 엄마야 워낙 정리정돈에 있어서는 한 평생 외길 인생을 걸어오셨으니 그 축적된 내공? 살림을 등한시하는 나와는 반대로 엄마는 평생을 정리정돈에 승부를 거셨다. 생전 청소니 정리니 하지 않는 딸방을 그렇게 치워대면서 핑계는 꼭 '사람들이 오면 보잖아' 였다. 그럼 그냥 내 방문을 닫으라고. 고생하지 말고! '나중에' 내가 할 터이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치우라는 엄마의 말도, 문만 닫으라는 내 말도.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난 나중에도 안 치울거고, 엄만 ’사람들 보기에‘가 아니라 엄마가 보기 좋으려고 였을거다. 결혼을 하고 멀리 이사오면서 친정과는 멀어져서 엄마는 우리집에 한 번도 안 오셨다. 못 오신건가? 그러다 처음 전세가 아닌 우리집으로 이사가던 날 수 년만에 엄마가 왔다. 큰 아이가 5살. 둘째는 아직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대신해서 살림살이 정리를 해주러~ 아직도 아이 돌보기가 어렵던 우리 부부는 새벽에 애가 깰까봐 조심조심하는데 , 엄마는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겁도 없이 내고 계셨다. "아 엄마 지금 몇신데? 애 깬다. 이제 그냥 자. 자고 내일 해. 내일은 일 안할거야? 자고 내일 해. 엄마 애가 깨서 그래~" "성식이 깼나? 다했다 다했다~" 씽크대 수도를 잠그고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 옆에 와서 잠든 손주를 요리조리 만져가며 다시 재운다. "하이고~지도 머시 들린다꼬 소리나가 깼나? 자자. 자자 성식아. 할매 다 했어. 이제 자자. 하이고 지도 듣긴다꼬~ 그쟈~~~? 우예 이리 잘생깄노~" "와~~엄마 이 시간까지 한거야? 대박! 내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야. 엄마는 청소가 좋아서 하는거야. 맞지?" "청소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딨노~할끼 많아가 하지~ 하이고 니는 살림도 와 이리 많노~다 쓰는기가?" 폭풍 잔소리가 이어지기 전에 나도 아이랑 잠들련다. 아이가 잠들고 나도 다시 잠이 들락말락~ 새벽 3시. 부엌에 수도 소리가 다시 들리고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다시 들린다. 맙소사. 이 시간에 또 해? 밤을 새겠다는 거야? 진짠가봐. 분명해~! 엄마는 좋아서 하는거야.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야. 이건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야. 나 그냥 자도 돼! 말리면 엄마 스트레스 받을거야. 승질대로 하게 내비둬내비둬~ 엄마는 청소를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기도 했었다. 그래도 뭔가 기분탓이라기엔 엄마 집은 청소하기가 너무 편하고 좋았다. 복잡한 삶을 인내하고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나머지 일들을 단순화 시키는 계책이 저절로 서는 거 아닐까? 나에게 청소는 하나의 일이다. 무거운 숙제, 과제,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고 누군가에게 미뤄도 결국 내 손이 갈 곳이 남아있는 일. 엄마라고 달랐을까? 나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삶을 산 엄마에겐, 매일의 숙제인 청소 따위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무의식이 작용한 게 아닐까? 그런걸꺼야. 밥솥을 닦아내고, 씽크대를 닦아내고, 묵은 먼지를 닦아내면서 이런 엄마 살림 참 처음본다 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할 몫이 있는 날도 오는구나 그냥 보고도 지나치는 나였는데, 왜 나는 또 이렇게 나서서 하고 있을까? 나이가 들면 저절로 이렇게 되는건가? 한편으론 내가 너무 많은 살림을 끌어안고 살고 있구나. 집에 가면 단촐하게 살림들을 좀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살림들을 만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겹겹이 앉은 묵은 살림때를 닦아내면서 내 맘은 참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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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어 혼자가 되겠다는 딸에게 엄마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다면]“연하가 잠자리에선 잘 하냐? 많이 안아줘?” - 디어 마이프렌즈 마흔 넘어 혼자가 되겠다는 딸을 지켜보며 부모님 마음이 어떠셨을까 첫 아들을 낳고 딸을 둘째로 낳아 키우며 부모님은 그 딸을 두고 뭘 바라셨을까 대단한 성공이나 명예로운 삶 따위를 바라시는 게 아니었구나 어리석게도 이제서야 새롭게 깨닫는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편한테 사랑이나 받으며 알콩달콩 지내는 것이나 보면 좋겠다 생각하셨겠구나 뭘 더 바라실까 험한 세상 둘도 힘든데 혼자는 너무 힘들고 외로울텐데......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저러는 건 아닌가...... 싶어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엄마가 나를 키울때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뉘시며 더운날 시원하게 추운날 따뜻하게 지내거라 키우셨을텐데 살다보니 어느 날 한데서 찬 음식을 점심으로 떼우다가 문득 떠올랐다 내 아이 키우느라 온 정신이 팔려 잊고 살았는데 나를 그렇게 키워준 엄마에겐 내가 그 아이였다 정작 나는 잘 자라고 있나 순서를 뒤바꿀 수 없으니 나는 죽는 날까지 엄마 딸인데 그렇게 찬데 더운데 가려가며 키워 주신 나를, 정작 나는 어떻게 키우고 있는거지? 이제는 엄마 손을 타지 않으니 엄마 손을 대신해 내가 스스로 나를 귀하게 대접하며 엄마가 키워주신 것보다 더 잘 살아내는 것이 엄마가 바라는 마음이실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한다 엄마가 살아오신 세월과 내가 살아갈 세월이 다르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내가 원하는 삶이 '그저 평범한' 삶이 아니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나는 당당하게 잘 살아낼테니 걱정마시라고 큰소리도 쳤다 어찌보면 모나고 모질기까지 한 딸을 말려도 소용없겠다는 것쯤 내 배 아파 낳았으니 본인이 더 잘 아셨으리라 그래서 더 말리지도 설득하지도 않으셨을 것을 아니 더더욱 한데서 찬 음식을 먹기도 하며 지낸다는 얘기는 차마 엄마에게는 전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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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스코칭3. 아이를 낳고 나면 왜 깜빡깜빡할까?[ 맘스코칭3. 아이를 낳고 나면 왜 깜빡깜빡할까? ]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그냥 그렇게 버겁게 흘러가던 날이었다. 결혼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바뀐 어느 날이었다. ‘왜 이렇게 멍하지?’ 그래도 이 정도면 나 꽤 쓸만한 애였는데 왜 이렇게 뭔가 기억이 없지? 생각 자체가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출산하면서 뇌도 일부분 배설해 버렸나? 뭐가 달라져서 이런거지? 결혼전과 뭐가 제일 달라진고 하니 의식주를 제때, 제대로 할 수 없는 날들뿐이다. 연중무휴. 결혼 전에는 어떤 일을 하든, 주말이 있었다. 주말이 아니어도 곧 쉬는 날이, 쉬는 시간이 온다는 정해진 기대가 있었다. 모든 업무는 끝이 있다. ‘끝나고 쉬면 되니까….‘ 라는 기대감이 있다. 일 뿐만 아니라 사랑도 마찬가지. 연애를 해도 휴식은 있다. 종일 피곤한 데이트를 했다고 해도 저녁에 집에 가 쉴 수 있다. 육아는 달랐다. 내가 원할 때 잘 수 없다. 내가 원할 때 먹을 수 없다. 내가 원할 때 쉴 수 없다. 심지어 화장실도 내 맘대로 갈 수 없다. 쉬도 응아도 맘 편히 못 한다니 그야말로 삶이 엉망진창이었다. 하루 24시간을 멍하니 깨어만 있는 것과 같았다. 눈뜬장님.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자칫 이유식 만들기에 집중이라도 해버리면, 이유식을 만드는 동안 모조리 다 집어던져 유리그릇이 산산이 조각나고 그 파편에 찔려 피가 나는 ‘상상’ 을 해야 할 만큼 피로와 싸워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서워서 주저앉아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9개월짜리 아들이 덩그러니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왜 우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달래 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미친것처럼 엉엉 울다가 다 울고 혼자 일어나 또 치우고……. 누가 보면 그건 정말 내가 미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울었어야 했나? 그럴 경황이 있었다면 부엌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아이처럼 앙앙 울지는 않았겠지? 육아는 몇 년간을 잠 한번 푹 못 자고, 덜 자고, 덜 깬 상태로 연명만 한다. 잠이 들어도 각성 된 상태. 바스락 소리에도 깬다. 그래서 아기 엄마들은 애가 뒤척이기만 해도 깬다. 이거 너무 슬픈 거 아닌가…. 모성애가 아니다. ‘파블로프의 개’ 같은 거다. ‘깨어만’ 있다. 24시간을. 그래서 뇌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분명 뇌도 집중하고, 쉬었다가, 기억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삭제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그 과정 중에 ‘쉬었다가’ 가 프로세스에서 아예 빠져버린 거다. 계속 입력만 들어오니까 자꾸 삭제하고, 삭제하고, 삭제해서……. 결국……. 내 뇌가 망가졌구나 그래서 자꾸 깜빡깜빡 하는 거구나 출근하는 신랑이 너무 미웠다. 너는 갈 곳이 있어서 정당하게 편하게 합법적으로 빠져나가는구나.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순간, 잠깐이라도 너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크게 심호흡이라도 할 수 있겠다. 회사에는 정해진 점심시간이 있으니 제때 밥 먹을 수 있겠다. 얼른 먹고 잠깐 1분이라도 눈 감고 있을 수 있겠다. 아니, 나라면 안 먹고 잠을 선택하겠어…. 라고 아무도 묻지 않은 선택을 혼자 하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도움이라도 필요했다. 억울했다. 하루아침에 삶이 이렇게 변한다는 걸 왜 아무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지? 이런 삶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 달랐다. 아이가 자는 모습이 가장 예쁘다는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시간이 제일 불안했다. 곧 깨어날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내 삶을 온통 저당 잡혀 있는 기분이었다. 그 당시 미디어에서는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결혼생활과 행복한 가정에 대해 보여줬다. 출산했지만 여전이 아름다운 몸매와 더 아름다운 미모로 아이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다큐멘터리, 예능 프로 그램 들이 줄줄이 방송됐다. 그때는 결혼한 여자 연예인들에게 아이가 special 액세서리였다. ‘고소영 유모차’는 그런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육아용품이라고는 존슨즈 베이비 로션밖에 모르던 내 또래 엄마들이 그것 없이는 키울 수 없는 듯이 수입 육아용품을 검색하고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도 그 시기부터다. 미디어의 세뇌는 강력했다. 나도 결혼하면 아이부터 낳고 special 악세서리 하나쯤 장착한 요즘 여자 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임신기간중에 8개월 간 입덧을 하면서 체중이 오히려 줄어들 때에도, 내가 곧 출산을 할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철이 없었다. 육아에 대해서, 부모가 무엇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 막달이 되어 갈 즈음 그 자부심은 덜컥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하나의 생명을 생산해 내고, 그 생명이 하나의 삶을 꾸려가기까지 내가 기여해야 할 것들에 대한 부담감이 그때서야 고개를 들고 내 양심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생활이 달라졌다. 몸조리를 잘 해야 한다는 얘기에 산후조리원에 들어갔지만, 그때부터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깬다고 젖을 물려주라는 인터폰을 2-3시간마다 받으면서 짜증이 나는 내가 너무 죄스러웠다. 아기가 무슨 죄라고 ..... 해도 짜증이 나고 싫었다. 끝이 없었으니까. 일주일에 하루는 쉬게 해주는 근무가 아니니까. 정식 휴가는 없다는 게 그 때부터 실감이 났으니까. 아이는 악세사리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손주 사이가 각별한 건 ‘부모 자식간의 죄책감과 책임감’에서 빗겨나 있어서라고 하지 않던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나 대신 젖을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에게 젖꼭지가 왜 있는 건지 궁금했던 게 바로 그 시기였다. 도대체 왜 달려 있는거지? 사용하지 않는 것은 퇴화되는 게 진화의 원리 아닌가? 있으면 젖이라도 물리던가, 젖이 안 나올거라면 눈 앞에 안 보이던가~!! 당치도 않은 것들이 다 분하고 억울했다. 억울한들 내가 첫 아이를 키운 십여년 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육아서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첫 아이를 낳았다. 가제 수건 몇 장 받으려고 다닌 산모교실에서 또래 엄마들을 사귀고, 쇼핑이나 한 게 고작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10살 짜리가 저 스스로 컸지 네가 키운 건 하나도 없다던 신랑 말이 사실인 것도 같다. ‘그래 인정할테니 10년쯤 키웠으면 이제 그냥 독립하지 않을래~ 아들?? 애미도 혼자 좀 살자. 이제 그만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아이가 10살 때 써두었던 글이다 그 아이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으니 이 엉뚱한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아무리 첫 아이를 키우느라 괴로웠노라고 토로해도 그건 양육자 개인의 몫으로 끝이 나버린다 나의 애씀과 달리 아이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잘 살아내기 마련임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육아의 고통과 힘듦을 대대손손 자랑스레 얘기하며 물려주지 않았으리라 엄마 되는 게 쉬운 줄 알았냐고 단칼에 잘라낸 친정엄마의 말에도 많은 것이 묻어 있음을 이제야 짐작한다. 그렇다. 육아는 힘든 것이 맞다. 그러니 공연히 크게 떠들 일이 아닌 암묵지 같은 것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이럴 때는 모르는 게 약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