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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임서방 그늘에서 살아야 하나봐요“”나는 아직 임서방 그늘에서 살아야 하나봐요“ 친애하는 나의 쏭언니의 말이다 하루3시간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쏭언니는 첫 달 월급 108만원을 받아보고 허탈하고 기가 막혔다고 한다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라는 자괴감에 속이 상했다고......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수치화 할 수 있는 것은 치사하고 냉정하지만, 내가 얼마의 돈을 만들어내는 사람인가이다 더구나 스무살이 훌쩍 넘은 쏭언니의 두 딸들이 하는 말은 ”엄마! 엄마도 알바만 하지 말고 취직해 아빠만 평생 돈 벌고 힘들잖아 엄마도 이제 취직해서 3시간이 아니라 풀 타임 근무하고 200,300 월급 받아. 막내는 내가 돌봐도 되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면 혼자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 “ 학원에서 교회에서 차량을 운행하는데도 굳이 언니가 등,하교 픽업을 한다. 이유는? 간식을..... 먹여야 한단다. 쏭언니의 최후의 보루였다 초딩 막내 딸 핑계도 슬슬 끝이 나 간다. 사실 그 핑계는 이미 끝난지 오래다. 쏭언니가 부득불 붙들고 있는 줄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 아무도 그 야무진 막내를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씩씩하고 당돌해서 쟤는 뭐라도 하겠다고 혀를 내두르는 아이를 두고 언니는 방패 삼고 있으니, 어린 막내가 가엾은 건 쏭언니 한명 뿐이다. 그러니 막내는 여리고, 안쓰럽고,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어야 하는 것이다. 본인이 붙들고 있는 것이 막내가 아니라 세상에 나갈 자신이 없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어이 방패를 삼고 있으니 우리가 안쓰러운 건 막내가 아니라 쏭언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는 그 막내는 쏭언니에게만 문제가 많다 얘가 독해력이 없고 집중력이 없고 이해력이 약하고.....눈물을 글썽일 정도다 하아...얘처럼 눈치빠르고 당찬 아이를 두고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나 이제 막내 맡기고 하루종일 일해서 돈 벌고 싶어졌다고 말하던 기세는 2주일만에 수그러들었다 ”나는 아직 임서방 그늘에서 살아야 하나봐. 막내도 아직 어리구...“ 육아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대다수의 포커스는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양상들 중 문제를 삼는 부분은 그 양육자의 관점에 따른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나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이를 문제삼아 보고 있는 나의 생각을 관찰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아니라 나의 관점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내가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아이는 연약하고 불쌍한, 보호를 해도 해도 모자란 존재로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세상을 즐겁고 유쾌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더 많이 도전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행하는 놀이터가 될 것이다 나의 주의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집중’이다 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양상이 달라진다 주의를 집중해 고정시키면 그것이 신념이 된다 attention [주의.주목, 관심] 의 어원은 뻗다 tent에서 왔다 at 접미사가 붙어서 ‘어디에’ 뻗칠 것인가 즉, 나의 주의를 어디에 뻗을 것인가 나에게 무엇을 ‘지각’하게 할 것이냐 지각하는 것을 조절하는 것은 이미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살고 있다 수많은 광고와 마케팅이 그것이다 ‘침대는 과학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무엇을 규명지어주면 그것에 주의가 담기고, 그렇게 된다 내가 주의집중하고 고정시킨 생각이 신념이 된다 신념의 특징은 내가 만들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랫동안 습관처럼 이루어진 생각이라서 보이지 않아 인지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있지만 투명해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투명한 신념을 한겹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는 신념체계안에서 산다 옳고 그름은 없다 신념은 쉽게 만들고, 쉽게 지울수도 있음을 알게 되면 어우러져 함께할 수 있다 마음의 평화는 간절히 기도하거나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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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남자 없어?"“엄마는 남자 없어?” 하마터면 크게 한 입 베어물었던 크림새우를 뿜어낼 뻔 했다 엊그제 졸업한 초딩 딸래미랑 중학교 교복을 맞추고 밥을 먹던 중이었다 서로 배가 고파 주문한 짜장면과 짬뽕을 맛있다 연발하며 코를 박고 먹고 있는데 뜬금없이 다 큰 엄마를 보며 한다는 말이 “엄마는 남자 없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차마 가릴 틈이 없었다 ‘아 내가 오늘 너무 형편없어 보여서 그런가? ’ 시댁에 갈 땐 제일 후진 옷, 친정갈 땐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더니 딸래미 만날때도 해당되는 말인가? 엄마가 나 말고도 좀 행복하게 만나는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딸파심 같은건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크게 한바탕 웃었다 “엄마 오늘 너무 없어보이니? 너무 급하게 나오긴 했어. 엄마 오늘 너무 피곤했거든” “아니~~혼자 지내는 거보다 남자 친구도 좀 만나고 어? 이런것도 같이 사 먹고 어? 그러면 엄마가 좀 더 즐거울거 아니야” 벌써 엄마의 행복을 걱정할만큼 큰거야? 순간 다른 의미로 너무 안심이었다 아 알고 있구나 이 아이가 알고 있구나 이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얘가 아는지 모르는 지 물어볼 수도 없고 모르는 체 하느라 ‘이건 숨기는 걸까? 배려하는 걸까?’ 잔신경만 쓰고 있었는데 딸래미는 질문하나로 일거에 나의 걱정을 제거해주었다 알고 있구나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을 했고 나에게는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했어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시간들을 무언의 말로 잘 받아들였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다 키웠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 내 몫을 다 마친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엄마가 꼭 아빠랑 살지 않아도 돼 나도 이제 알만큼 알거든 엄마는 멋지게 엄마의 삶을 살아 나도 이제 내 삶의 평범한 시간으로 돌아갔어’ 라는 말로 치환해서 들리기도 했다 엄마의 연애사를 묻는 걸 보니 그렇다면 이제 너랑 나랑 연애 상담 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겠다 곧 너의 남자친구얘기, 짝사랑 얘기, 너의 친구 얘기인 척 말하는 너의 얘기들도... 그런 순간을 상상하니 잠시 짜릿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울 너의 연애 이야기가 처음에 얼마나 아프고 쓰릴지 얼마나 낯뜨거울지 모를, 80살까지 하게 될 너의 이불킥 사연들도 다 들어볼 수 있으려나 그 여러 과정들을 거쳐 성숙한 사람 성숙한 연인이 되어 멋있게 성장할 너의 미래가 순식간에 그려져서 애미는 혼자 몰래 웃었다. 내가 갖지 못한 순간들 엄마와 나누지 못했던 시시콜콜한 나의 짝사랑 이야기, 연애 이야기 언니도 없으니 더더욱 혼자 알아서 해야 했던 멘땅에 헤딩하듯 오롯이 혼자 겪어낸 나의 서툰 연애 스토리들 그런 순간을 너에게 주고 싶다 조잘조잘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복잡다단한 섬세한 감정들에 같이 공감하고 웃고 울어줄 그런 순간들 “엄마는 왜 갈수록 예뻐져?” 너무 느닷없는 솔직한 고백공격을 듣게 될지 몰랐던 오늘은, 행운의 날인가?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인연은 다 지나가고 흘러가는 거니 연연할 필요가 없다라는 얘기를 하다가 “엄마 그만~! 지금 엄마 '꼰모' ” 꼰모 “응? 꼰모가 모야? '꼰'은 꼰대 맞는거 같고...” “꼰대 모먼트” 아!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못 참고 그만 터져버릴 것만 같은 너의 순간이 오면 언제든 엄마를 찾아오렴 너의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엄마가 모두 품어줄게 네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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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나 낳았을때 마음이 어땠어?엄마가 그랬다. “그래도 니 낳고는 서울로 살림 날끼라고 엄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때는 지인~짜 좋았어” 그 말 덕분인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속으로 엄마와 정말로 화해가 된 건. 내가 엄마한테 행복함을 주었다는 사실. 사실은 내가 엄마에게 그렇게 귀찮고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 나를 낳고는 그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살림을 날 거라고 좋아하는 젊은 엄마가 떠올랐다. 그 시점에 태어났을 뿐인 나를 복덩이라고 의미를 덧붙여 더 좋아했을 엄마가 보이는 것 같았다. 곧 이사를 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30대의 젊은 새댁이었을 우리 엄마. 딸이라 그런지 더 예쁘다라고 말하며 웃고, 행복해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그만 황홀해졌다.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도 있었구나. 그래, 어찌보면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이 많았겠구나.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며 마음이 행복하고 흐뭇한 걸 보면... 아빠 때문에 구겨지고 힘들어진 엄마 마음 한편엔 그래도 내가 늘 사랑스럽고 예뻤겠구나. “하이고~니는 좋은 일만 있었어. 시골 내려올 때도 그래. 니 고1 때니까 사춘기 아이가. 어디 다른 시골, 머 강원도나 전라도나 이런데서 온 것도 아니고 서울에 살다가 그 시골로 이사를 했는데 싫다 소리도 안하제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니까 엄마는 고마웠지. 그라고 2학년땐가? 반장도 안 했나. 아, 2학년, 3학년 두 번 했나? 그 봐라~. 전학가가 반장 2년 동안 하기가 쉽나~ 대학도 특차에 한 번에 안 붙었나. 그것도 국립대. 엄마가 하도 국립대 아니면 안 된다고 세뇌를 시켜갖고 니가 그래 안 됐나 ㅎㅎ. 그 때 경북대를 갔어야 되는데. 그 때 넣었어도 아마 됐을거야. 그치? “ “우리가 할머니 집에 모시고 십 몇년을 살았는데 니 방 창문 열면 베란다 아이가. 그 베란다 쓰레기통에 할매 기저귀 땜에 똥 오줌 냄새가 방에 그렇게 진동을 하는데, 니는 참말로 냄새난다고 불평도 한마디도 안하고.... 여름 되마 방에 창문도 몬 닫고 냄새가 진동을 할 낀데도 한 번도 냄새난다고 소리를 안하드라고. 그 때는 참말로 엄마가 미안하드라. 한창 여고생이 깔끔 떨고 유난떨고 할낀데, “ 그 때쯤 목이 메었던 거 같다. 아......엄마가 아는구나. 맞아.... 냄새 많이 났었지. 그래도 그냥 그렇게 사는 건줄 알았지, 난 불평할 꺼리라곤 생각 못 했는데...그래서 난 원망하는 건 없었는데.... 엄만 그런 것도 하나하나 고마웠구나... 추억은 웜홀 같다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때의 시간 그때의 나로 한꺼번에 빨려 들어간다고... 엄마 얘길 들으니 그 때 할머니 기저귀 냄새가 다시 난다. 난 싫지 않았는데. 냄새라고 못 느꼈는데.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좋은데. 난 오히려 그립다 할머니 냄새. 드시는 약 때문에 약간 병원냄새 같았던 할머니 기저귀 냄새. 그 때의 엄마는 대학생인 오빠와 고등학생인 나까지 자식 둘에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그저 살기에 바빴고, 감수성 예민한 그 때의 내게 그 공허한 간극을 메꿔주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있어서 난 그나마 좀 포근했는데.... 그래서 그건 나에게 냄새가 아니라 추억같은건데... “엄마, 나 태어났을 때 엄마 마음이 어땠어?” 라는 질문 하나로 행복한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 나의 탄생이 부모에게 소중했다는 얘기가 나의 자존감을 한꺼번에 쑤욱 올려줬던 것 같다. 나의 존재는 부모로부터 왔으니까. 그 당연한 진리가 부모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서울로 살림을 나 희망에 찼던 젊은 새댁이 신랑과 재미지게 살기까지 했다면, 나는 “재수없다 저리가라.” 라는 모진 말이 아니라 “엄마가 너 낳고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 라는 달콤한 말들을 진작 듣고 살았을텐데, 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였구나... 나 사랑스러운 아이 맞구나! 라는 생각에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오늘따라 목울대가 왈칵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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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소는 정신적인 일이다오랜만에 간 친정집은 언제나 그렇듯 늘 그대로다 깔끔하게 정돈 돼 있고, 살림은 늘 간결하다. 하지만 군데군데 손대지 않아 먼지가 쌓여있고, 씽크대 손 닿는 곳에 기름때도 껴 있었다. 그걸 놓칠 우리 엄마가 아닌데.... 겹겹이 쌓인 살림살이 구석구석이 내 눈에 보이는 건, 가게 때문에 바빠진 엄마가 집에 오면 피곤해서 아무도 없는 집안의 살림따위 등한시하기 시작한 덕분일까? 나도 나름 10여년차 주부라고 눈에 띄인것일까? 어쨌든, 정돈은 항상 되어 있으니 먼지나 털어내고, 청소기나 돌리고 씽크대 기름때나 한번 닦아내면 그만일 일이었다. 슬쩍 일어서서 앞치마를 둘러 메어 본다. 청소기가 어디있을까나~있을법한 곳을 몇 군데 보니 역시나 거기에 있다. 정리정돈은 하여튼~ 청소기를 꺼내다가 바닥을 쓸어내다 보니, 정말 청소는 한참을 손 대지 않으셨나 보다. 구석구석이 사람 사는 곳만 피해 먼지가 적잖이 밀려나와 있었다. 청소기만 한바탕 돌려도 정돈 잘 된 친정집이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것 같다. 정돈이 잘 돼 있어서 걸리적 거릴 것도 없고, 구석구석 참 청소할 맛 나는 집이었다. 시집 오기 전에 살땐 그렇게 구조가 맘에 안 들었던 친정집. 널찍하지도 않고, 뻥 뚫린 것도 아니고 저층이라 어두컴컴한 친정집이 별로였다. 지금 다시 둘러 봐도 달라진 건 없는데, 왜 그럴까? 애들 살림이 없어서 그런가? 엄마야 워낙 정리정돈에 있어서는 한 평생 외길 인생을 걸어오셨으니 그 축적된 내공? 살림을 등한시하는 나와는 반대로 엄마는 평생을 정리정돈에 승부를 거셨다. 생전 청소니 정리니 하지 않는 딸방을 그렇게 치워대면서 핑계는 꼭 '사람들이 오면 보잖아' 였다. 그럼 그냥 내 방문을 닫으라고. 고생하지 말고! '나중에' 내가 할 터이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치우라는 엄마의 말도, 문만 닫으라는 내 말도.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난 나중에도 안 치울거고, 엄만 ’사람들 보기에‘가 아니라 엄마가 보기 좋으려고 였을거다. 결혼을 하고 멀리 이사오면서 친정과는 멀어져서 엄마는 우리집에 한 번도 안 오셨다. 못 오신건가? 그러다 처음 전세가 아닌 우리집으로 이사가던 날 수 년만에 엄마가 왔다. 큰 아이가 5살. 둘째는 아직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대신해서 살림살이 정리를 해주러~ 아직도 아이 돌보기가 어렵던 우리 부부는 새벽에 애가 깰까봐 조심조심하는데 , 엄마는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겁도 없이 내고 계셨다. "아 엄마 지금 몇신데? 애 깬다. 이제 그냥 자. 자고 내일 해. 내일은 일 안할거야? 자고 내일 해. 엄마 애가 깨서 그래~" "성식이 깼나? 다했다 다했다~" 씽크대 수도를 잠그고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 옆에 와서 잠든 손주를 요리조리 만져가며 다시 재운다. "하이고~지도 머시 들린다꼬 소리나가 깼나? 자자. 자자 성식아. 할매 다 했어. 이제 자자. 하이고 지도 듣긴다꼬~ 그쟈~~~? 우예 이리 잘생깄노~" "와~~엄마 이 시간까지 한거야? 대박! 내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야. 엄마는 청소가 좋아서 하는거야. 맞지?" "청소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딨노~할끼 많아가 하지~ 하이고 니는 살림도 와 이리 많노~다 쓰는기가?" 폭풍 잔소리가 이어지기 전에 나도 아이랑 잠들련다. 아이가 잠들고 나도 다시 잠이 들락말락~ 새벽 3시. 부엌에 수도 소리가 다시 들리고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다시 들린다. 맙소사. 이 시간에 또 해? 밤을 새겠다는 거야? 진짠가봐. 분명해~! 엄마는 좋아서 하는거야.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야. 이건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야. 나 그냥 자도 돼! 말리면 엄마 스트레스 받을거야. 승질대로 하게 내비둬내비둬~ 엄마는 청소를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기도 했었다. 그래도 뭔가 기분탓이라기엔 엄마 집은 청소하기가 너무 편하고 좋았다. 복잡한 삶을 인내하고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나머지 일들을 단순화 시키는 계책이 저절로 서는 거 아닐까? 나에게 청소는 하나의 일이다. 무거운 숙제, 과제,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고 누군가에게 미뤄도 결국 내 손이 갈 곳이 남아있는 일. 엄마라고 달랐을까? 나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삶을 산 엄마에겐, 매일의 숙제인 청소 따위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무의식이 작용한 게 아닐까? 그런걸꺼야. 밥솥을 닦아내고, 씽크대를 닦아내고, 묵은 먼지를 닦아내면서 이런 엄마 살림 참 처음본다 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할 몫이 있는 날도 오는구나 그냥 보고도 지나치는 나였는데, 왜 나는 또 이렇게 나서서 하고 있을까? 나이가 들면 저절로 이렇게 되는건가? 한편으론 내가 너무 많은 살림을 끌어안고 살고 있구나. 집에 가면 단촐하게 살림들을 좀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살림들을 만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겹겹이 앉은 묵은 살림때를 닦아내면서 내 맘은 참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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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어 혼자가 되겠다는 딸에게 엄마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다면]“연하가 잠자리에선 잘 하냐? 많이 안아줘?” - 디어 마이프렌즈 마흔 넘어 혼자가 되겠다는 딸을 지켜보며 부모님 마음이 어떠셨을까 첫 아들을 낳고 딸을 둘째로 낳아 키우며 부모님은 그 딸을 두고 뭘 바라셨을까 대단한 성공이나 명예로운 삶 따위를 바라시는 게 아니었구나 어리석게도 이제서야 새롭게 깨닫는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편한테 사랑이나 받으며 알콩달콩 지내는 것이나 보면 좋겠다 생각하셨겠구나 뭘 더 바라실까 험한 세상 둘도 힘든데 혼자는 너무 힘들고 외로울텐데......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저러는 건 아닌가...... 싶어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엄마가 나를 키울때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뉘시며 더운날 시원하게 추운날 따뜻하게 지내거라 키우셨을텐데 살다보니 어느 날 한데서 찬 음식을 점심으로 떼우다가 문득 떠올랐다 내 아이 키우느라 온 정신이 팔려 잊고 살았는데 나를 그렇게 키워준 엄마에겐 내가 그 아이였다 정작 나는 잘 자라고 있나 순서를 뒤바꿀 수 없으니 나는 죽는 날까지 엄마 딸인데 그렇게 찬데 더운데 가려가며 키워 주신 나를, 정작 나는 어떻게 키우고 있는거지? 이제는 엄마 손을 타지 않으니 엄마 손을 대신해 내가 스스로 나를 귀하게 대접하며 엄마가 키워주신 것보다 더 잘 살아내는 것이 엄마가 바라는 마음이실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한다 엄마가 살아오신 세월과 내가 살아갈 세월이 다르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내가 원하는 삶이 '그저 평범한' 삶이 아니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나는 당당하게 잘 살아낼테니 걱정마시라고 큰소리도 쳤다 어찌보면 모나고 모질기까지 한 딸을 말려도 소용없겠다는 것쯤 내 배 아파 낳았으니 본인이 더 잘 아셨으리라 그래서 더 말리지도 설득하지도 않으셨을 것을 아니 더더욱 한데서 찬 음식을 먹기도 하며 지낸다는 얘기는 차마 엄마에게는 전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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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농협, 청년농업인 육성에 앞장 설 것전남농협지역본부(본부장 박종탁)와 전남농업기술원(원장 박홍재)은 4월 6일부터 9일 까지 4일간 농협광주유통센터(지사장 임정모)에서 「상큼애‧오매향과 함께하는 전남 청년농업인 특별판매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7일 개최될 개장식에는 박종탁 본부장 및 박홍재 원장, 청년농업인, 임정모 지사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전남 청년농업인이 생산인 농산물 및 가공품 판촉활동을 하고, 청년농업인 육성을 위한 간담회를 추진한다. 이번 특별판매전은 전남 광역 농산물 브랜드 「상큼애 및 오매향」의 홍보 및 사업 확대를 위해 추진한다. 상큼애는 전남원예농산물 브랜드로서 딸기, 방울토마토, 무화과, 배 등 과일 및 채소 7종이 포함되어 있다. 오매향은 전남 아열대 과일 브랜드로 애플망고, 바나나, 비파, 체리를 포함하여 총 4종이다. 현재 농업은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이에 전남농협은 농산물 판매사업을 통해 광역 농산물 브랜드를 육성하고,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해 청년농업인을 육성할 계획이다. 전남농협 및 전남농업기술원이 추천한 12농가가 이번 특판전에 참여하며, 이들이 생산한 블루베리, 방울토마토, 비파 등 농산물 및 가공품을 시중보다 최대 40%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박종탁 본부장은 “농업‧농촌의 미래기반 조성을 위해 청년농 육성이 어느때 보다 중요한 때 ”라며 “전남농협은 청년농업인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 청년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 판매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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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1번지 강진군,‘리시안사스’수확 한창강진군은 올해 신규 화훼 소득작물 육성을 위해 처음 도입한 ‘리시안사스’ 수확이 한창이다. ‘리시안사스’는 부케나 꽃다발 등 장미만큼 널리 사용되는 꽃으로 모습도 향기도 은은하다. 또, 수확 후 개화기간이 2주 이상으로 길고, 화색이 다양해 인기가 많으며, 다른 화훼 작목과 재배기간이 겹치지 않는 등 장점이 많은 품목이다. 군에서는 올해 처음 3농가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 농가는 작약, 수국, 딸기를 주력으로 재배하는 농가들이며, 여름철 틈새 소득작물로 리시안사스를 재배했다. 정식 및 수확 시 노동력이 들지만, 전반적인 재배 관리가 편하고, 단기간에 수확이 가능한 이점이 있다. 수확한 리시안사스는 양재동 및 광주 화훼공판장으로 출하하고 있으며, 꽃 한 단의 평균 경매가는 7천 원으로 농업인 소득향상에 대한 전망이 밝다. 최영아 연구개발과장은 “리시안사스는 타 화훼 절화류에 비해 개화기간이 길고 유통시장에서 꾸준한 소비가 있는 꽃이다. 품질과 생산량이 뒷받침된다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추후 강진의 새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기술적‧행적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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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 성공귀농 행복귀촌 함께 해요!고흥군(군수 송귀근)은 지난 11일 귀농귀촌 농업배움터로 지정된 10개소대표자를 모시고 운영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귀농귀촌 농업배움터는 고흥으로 귀농ㆍ귀촌을 준비한 연수생에게 전문적인 영농기술을 전수하여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고흥군 대표 작목인 10개 품목인 블루베리, 딸기, 만감류(천혜향·한라봉), 채소, 유기농유자, 참다래, 복숭아, 오이, 석류, 한우 등 선도농가이다. 작목별 농업배움터에서는 10명의 연수생을 대상으로 영농기인 3월부터11월 기간에 파종에서 재배관리, 수확, 판매까지의 일련 과정을 10회에 걸쳐 회당 4시간으로 영농 현장에서 체험 교육이 운영되며 40시간의 교육수료가 인정된다. 군 관계자는 “성공적인 귀농귀촌 정착을 위해 농업배움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연수생들의 기술 습득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도 확대 유지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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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행복한 제2의 인생 시작합니다”강진군은 지난 10일 도시민 12세대를 대상으로 체류형 귀농사관학교 입교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올해 입교생들은 귀농·귀촌을 위해 서울과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신청한 도시민으로 총 12세대이다. 9개월 동안 강진에 머물면서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교육을 받는다. 올해로 4년째를 맞는 이번 입교식은 입교자, 귀농선배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관학교 운영 계획, 입교생 소개 그리고 1기 수료생인 최신만 농가의 정착기를 들으며 마무리 됐다. 입교생들은 3월 한달간 주작목 배움 교실에 13회 참여하면서 작목을 선택하고 4월부터 멘토-멘티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 작목 재배기술 및 영농 노하우, 주변 농가와의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귀농·귀촌 후 영농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 받게 된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강진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고 귀농귀촌에 필요한 인적, 물적 인프라도 만드시길 바란다”며 “더 행복한 인생 2막이 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3년간 체류형귀농사관학교를 통해 강진에 정착한 세대는 17세대 33명이며, 딸기, 작약 등을 재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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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행복한 제2의 인생 시작합니다”강진군은 지난 10일 도시민 12세대를 대상으로 체류형 귀농사관학교 입교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올해 입교생들은 귀농·귀촌을 위해 서울과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신청한 도시민으로 총 12세대이다. 9개월 동안 강진에 머물면서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교육을 받는다. 올해로 4년째를 맞는 이번 입교식은 입교자, 귀농선배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관학교 운영 계획, 입교생 소개 그리고 1기 수료생인 최신만 농가의 정착기를 들으며 마무리 됐다. 입교생들은 3월 한달간 주작목 배움 교실에 13회 참여하면서 작목을 선택하고 4월부터 멘토-멘티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 작목 재배기술 및 영농 노하우, 주변 농가와의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귀농·귀촌 후 영농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 받게 된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강진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고 귀농귀촌에 필요한 인적, 물적 인프라도 만드시길 바란다”며 “더 행복한 인생 2막이 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3년간 체류형귀농사관학교를 통해 강진에 정착한 세대는 17세대 33명이며, 딸기, 작약 등을 재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