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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그런 때삶이 도무지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고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다 내가 선택했든 삶이 나를 내동댕이 쳐 버려졌든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느낌 정하는대로 갈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없는 아직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그런 때 그럴 때 만나는 누군가는 그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진다 그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에 내 삶에 등장한 동갑내기 친구는 복잡다단하게 나의 감정들을 건드렸다 처음엔 수치심이었다 나는 너무 초라해 나는 너무 어리석어 그러니 나는 사랑스럽지 않아 차라리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겠어 수치심을 마주하는 동안에는 매순간 1분 1초가 매우 처절해진다 실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 울음이 터지고 세상이 잿빛이다 그리고 서럽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 ‘이건 내 탓이 아니야’ 수도 없이 부정하고 방어한다 나를 보호하려고 내 안의 또다른 내가 기를 쓰고 나선다 인간의 무의식은 여기가 마지노선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죽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다음은 열등감이었다 나는 왜 저렇게 못했을까? 나는 왜 하지 않았었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동안 뭘 했지? 수치심으로 자존감이 무력해지고 시간이 지나 조금 살만해지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열등감으로 넘어간다 열등감을 마주하는 순간은 매우 낯뜨겁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고 금새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분하다 수치심과 비슷한 것 같지만 매우 다르다 적어도 ‘죽고 싶다‘는 아니다 그 다음은 외로움이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것밖에 안되었네 있는 그대로의 진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수치심과 열등감을 지나면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어느정도는 받아들인다 노력해서 될 일과 아닌 일이 있다는 것쯤 이해하게 된다 이토록 시시한 나와 악수하고 화해도 한다 그리고 쓸쓸하다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타인을 찾는다 제발 나를 사랑해 달라고 당신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면 그러면 마치 나의 이 내면의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사랑하고 , 열심히 일하고 , 열심히 살았다 외로움은 그렇게 해결되는 감정이 아니었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때로 매우 길어지고 혼자보다 둘이 더 외롭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만‘ 살았던 이유는 온갖 알은채를 했지만 정작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남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길러낸 적도 없고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까?‘ 라는 생각으로 일도 하고 사랑도 했겠다....... 자애(自愛) 명상을 배웠다 우선 편안하게 호흡하는 것을 나에게 허락해 주어야 한다 편안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한 손을 가슴에 얹은 후에 천천히 그리고 작은 소리로 따라 해보는 것이다 "부디 내가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부디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부디 내 몸이 건강하기를" 수박과 바나나 한송이를 사주고 간 다음날 그 친구는 나의 삶에서 퇴장하고 자기 삶에 충실하겠노라고 선언했다 하필 바나나였을까? 바나나.... 바나나라니.... 허기진 배도 채우고 외로움도 달래보라는 뜻이었나 짐작하고 한 번 피식 웃어본다 그 친구가 나를 좀 더 사랑해주고 좀 더 나를 예뻐하고 표현해주기를 바라던 끝에서 나는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어서 이렇게 바라고만 있나 생각해보니 내가 내어줄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부디 안녕하기를 빌어주고 바라는 것 뿐이었다 그건 멀리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편히 이 친구를 놓쳐주었다 사소한 다툼 끝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이라는 말에 발끈했지만 나의 잘못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함부로 외로울 수 있는 상황에 나 스스로를 던져놓고 외로움 따위 의연하게 견딜 수 있다고 믿은 나의 어리석음이었다 내 안의 낯 뜨거운 온갖 감정들을 들쑤셔놓은 그 친구는 나쁜 놈이라고 치부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망망대해에 혼자 던져진 이 때의 나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기도 하였다 내 삶의 가장 바닥이라 믿고 싶은 지금의 순간들을 지켜봐주어서 감사한 아직은 더 살만하다고 믿게 해준 용기를 주어서 감사한 부족한 나를 호되게 야단치지 않고 늘 생각할 시간을 주어서 훌륭한 친구였다 자비 명상을 그 친구에게도 보내본다 "부디 당신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부디 당신의 마음이 편안하기를" "부디 당신의 몸이 건강하기를" "부디 당신이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가 나의 기도처럼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면 내심 그건 다 내 기도 덕이라는 위안을 할 수 있는 때가 부디 오기를 thank u, next 블레즈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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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록 지사, 꾸징치 총영사와 지속적인 협력관계 다짐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4일 취임 인사차 방문한 꾸징치(顧景奇) 제6대 주광주중국총영사와 변함없는 우정과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이어가기로 했다. 꾸징치 총영사는 지난 2월 20일자로 부임한 이후 한국 외교부 등 중앙기관을 방문했으며, 이날 김영록 지사 예방을 시작으로 공관 관할지역 내 지방정부 협력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김영록 지사와 꾸징치 총영사는 그동안 다져온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양 기관 간 협력을 향후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김영록 지사는 “호남지역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한중 지방정부 교류가 다방면에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꾸징치 총영사께서 한·중 지자체 교류에 큰 역할을 해 줄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꾸징치 총영사는 “전남도와 중국 지방 정부 간 협력강화를 위해 주요한 가교역할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김영록 지사는 또 꾸징치 총영사에게 전남도의 역점 사업, 중국과의 경제무역, 지방정부 교류계획 등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한국이 낯선 꾸징치 총영사께서 전남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적절한 시기에 지역을 돌아보도록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주광주중국총영사관은 그동안 전남도에 코로나19 방역물품 기증, 호우피해 위로 서한문 발송 등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임을 증명하며 교류의 정을 돈독히 쌓아왔다. 꾸징치 총영사는 그동안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말레이시아 등에서 주로 근무했으며 한국 근무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김영록 지사 예방 후 전남도의회 의장, 전남도교육감 등 전남지역 주요 기관장 예방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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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관광BI ‘목포랑’캐릭터 이모티콘 무료 배포목포시는 관광브랜드(BI) ‘목포랑’ 캐릭터를 활용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25,000명에게 선착순 무료 배포한다. 시는 지난해 11월 무료 배포된 ‘목포랑’ 이모티콘이 시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이번에는 본격적인 봄 행락철을 겨냥해 봄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제작해 배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모티콘은 목포시 관광브랜드(BI) 캐릭터 ‘목포랑’ 디자인을 활용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자들이 일상에서 친근하게 사용하는 동작 16종으로 구성됐다. 이모티콘은 오는 6일 오후 2시부터 선착순 25,000명에게 무료 배포된다. 기존 목포시청 카카오톡 친구맺기가 등록되어 있는 사용자는 카카오톡 알림이 오면 바로 다운로드 하면 되고, 친구추가가 되어있지 않은 사용자는 모바일 카카오톡 채널 검색창에 ‘목포시청’을 입력해 친구를 추가하면 다운받을 수 있다. 이모티콘 사용기간은 다운로드 이후 30일간이다. 시는 새로 개발된 관광BI ‘목포랑’ 캐릭터 이모티콘을 통해 목포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고 캐릭터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을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올해도 ‘대한민국 4대 관광거점도시 목포’의 위상에 걸맞는 다양한 관광인프라 구축사업 및 콘텐츠 개발 사업으로 더 많은 관광객이 목포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관광브랜드(BI) ‘목포랑’은 목포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되면서 관광객들에게 호감과 연상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목포시를 대표하는 정체성과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도록 관광도시로써 브랜딩화 하고 이와 연계한 다양한 관광기념품을 제작하기 위해 지난해 6월 개발됐다. ※ 사진 설명 목포시가 관광브랜드 ‘목포랑’ 캐릭터 이모티콘을 무료 배포한다./ 목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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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총량의 법칙.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대나무숲이 있어야 한다 한없이 무너지고 싶은 날 무슨일이냐고 아무것도 따져 묻지 않고 피상적인 위로나 격려 따위 없이 아무 설명 없이 무너져도 괜찮은 곳, 그런 곳 그 앞에서 무너져 펑펑 울고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툭툭 일어날 힘을 얻는 그런 곳 며칠 전, 이유 없이 마음이 조급하게 쫓겨 오갈데를 모르더니 점점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장악해가고 있었다 한두시간 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예감에 어딘가 알리고 쏟아낼 곳을 급히 찾았다 부모님은 걱정하실테고, 가벼운 친구들은 놀랄 것이고, 쎈 캐릭터의 친구들에게 불안 따위 말해봐야....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단번에 알아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위로나 격려 따위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가타부타 설명없이 쏟아내도 안전한 곳 10년 가까이 이어온 모임이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느슨하게 나를 늘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모임이었다 근래의 소식은 대략 알고 있으니 내가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알아 들어줄 사람들 그리고 반드시 나를 일으켜 줄 사람들 “지난주부터 이상하게 우울하네요... 일은 계속 열심히 하고 있고 그래서 체력도 확실히 좋아졌는데 불안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불안한거 아닌거 같은데 그냥 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뭔가가 두려운거 같고 두렵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막 눈물도 나고.... 엄마한테 말하면 걱정하실거 같고 유일한 친구는 쎈 캐릭터라 우울 따위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히고 그냥 우리 톡방에라도 올려놔야 될 거 같아서 갑자기.....별 일 없겠죠? “ 툭 써놓고 나니,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두려웠던 그 무언가 해소되면서 갑자기 천근만근이던 몸이 가벼워져 어이없게도 몇 주씩 미뤘던 집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참지 말고 풀어가며 하라며 우울해도 되고 참지 않아도 된다고.... 힘들면 징징대도 된다고 이 나이를 먹도록 아직도 단단하지 않고 약한 내가 나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남들에게 짐이 될 것만 같은 수치심에 힘들어도 괜찮은 척, 명랑한 척 하고 지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덜자란 어린애인 것을..... 들키면 안되는 줄 알았다 나만 빼고 다들 어른 같고, 다들 강한 것 같아서, 약한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 였다 아니었다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나보다 단단해 보이던 그들이 사실은 누구보다 지금 나의 시기를 치열하게 견뎌온 사람들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어설픈 위로나 충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대신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다 ”하나씨 내가 옛날에 얼마나 진상이었는지 얘기 했었죠? 난 3년을 했다구요 사람들이 나를 싫어서 안 만나려고 할 때까지 다 했어요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풀리더라구요 난 3년은 해야 풀리는 애였어요“ ”나를 액받이 무녀라 생각해요 나한테 다 던져요 난 괜찮아요 나도 예전에 주위 사람들 전부에게 던졌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저는 알아요“ ”언제든 와요. 같이 밥 먹어요“ 지랄총량의 법칙. 지랄은 다 해야 끝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걸 다 견뎌줄 맷집이 있는 사람들 그들이 대나무숲으로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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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be kind “자신의 실수로 혹은 어쩔 수 없는 재난적인 상황으로 더는 게임을 할 수 없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삶이었다며 비관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의 난이도 높은 삶에 다시 몰입하는 것을 결심하세요“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내 마음에 상처를 입고 무너지게 되면 뇌는 자기 보호모드에 들어가 방어기제가 발동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해하려고 시니컬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너무 힘들고, 너무 지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찌르는 것 같으면 냉소와 비관주의를 갑옷처럼 두르게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번아웃이 심해지면 터널 시야로 뇌는 변하게 된다고 하는데 보고 싶은대로만 주변을 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정적인 것들만 보이게 되고 주변 모든 것에 냉소적으로 변하게 된다 새로운 자극이나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반응인데, 더 큰 문제는 다시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차단하는 것이다 악순환의 패턴에 나를 가두는 것 냉소적인 사람의 뇌와 몸에는 염증 인자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삶에 염증을 느낀다“는 표현이 실제로 우리몸에 일어나는 셈이다. 실제로 냉소적인 사람의 심장병 발병 확률이 높고, 뇌의 백질은 줄어들고,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릴 확률도 더 높다는 연구 결과다. 냉소주의는 단순히 삶의 태도 중 하나가 아니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소득수준이다 냉소적인 태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월 소득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사람은 협업을 잘 못하고, 함께 일하는 것을 거부하고, 반사회적인 경향을 보이는 비율도 높다 이런 사람들이 이타적인 행동 또한 현저히 적게한다. 소득수준이 낮은 것과 이러한 지표들이 상관관계가 있다라는 해석이 덧붙여져 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삶의 쓴맛을 다 맛봤어, 나는 이럴 수 밖에 없어“ 라고 항변할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슬픔이 가득할 때 대체 내게 어떤 선택권이 있냐고 물으시겠지만 분명 우리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대한 친절한 태도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내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린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린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을 긍정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의 능력이고 가장 큰 힘이다“ ”제발 우리 서로 친절합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때는 친절하세요“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다니엘 콴 감독 헐리우드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수상을 기록한 영화의 감독의 인터뷰이다 살면서 비관적 냉소적이 되기는 너무나 쉽다 자연스러운 뇌의 방어기제이기도 하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나 그런 미운 마음이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일종의 독처럼, 자신의 마음을 툭 던진 말이 송곳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꽂힐 때 그 사람의 삶은 더 비관적 냉소적이 될 수 있다 마치 전염병처럼 사회를 무감하게 하고 차갑게 만드는 냉소 나는 최근 힘든 일을 겪으면서 냉소적으로 쏘아붙이는 말들을 하기도 했다 미운 말들을 잔뜩 쏟아내는 친구에게 마음속으로..... 내가 이렇게까지 힘든걸 뻔히 알면서, 나에게 꼭 그렇게 말해야 하냐고 말이다 문제는 마음이 한번 얼면 녹이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 얼어 있는 그 마음이 언제 녹냐? 누군가가 먼저 친절하게 한마디 던질 때 기대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친절하게 안아줄 때, 눈물이 핑 도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살아갈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그래 내 마음을 네가 알아주는 구나’ ‘네 덕분에 그래도 내가 열심히 산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 뇌에서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분비량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친절을 베풀 때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는데 이는 동맥경화위험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시니컬함이 몸의 염증수치를 높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친절한 행동이 냉소가 뇌에 주는 악영향을 완전히 반대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의 태도와 행동이 나의 뇌를 변화시키고 호르몬 조절과 건강에 영향을 준다? 재미있는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대하는 작은 태도가 인생에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미운 말을 했던 그 친구가 며칠 뒤, 내가 힘든일을 겪고 왔을 때 말없이 손을 뻗어 안아주었을 때는 마음이 울컥했다 언제 미웠냐는 듯 마음이 스르륵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 친구가 그렇게 미운 말들을 했던 그 때, 내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예상치 못한 삶의 어려움에 한껏 시니컬해져있던 중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두 지금의 내 나이, 한치 앞을 모르는 오늘의 삶이 처음이니까 누구나 자기 앞의 장애물을 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 내가 먼저, 미운 태도와 말을 쏘아붙이던 그 친구를 그만 용서하는 친절을 베풀기로 한다. 내 심장의 건강과 뇌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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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남자 없어?"“엄마는 남자 없어?” 하마터면 크게 한 입 베어물었던 크림새우를 뿜어낼 뻔 했다 엊그제 졸업한 초딩 딸래미랑 중학교 교복을 맞추고 밥을 먹던 중이었다 서로 배가 고파 주문한 짜장면과 짬뽕을 맛있다 연발하며 코를 박고 먹고 있는데 뜬금없이 다 큰 엄마를 보며 한다는 말이 “엄마는 남자 없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차마 가릴 틈이 없었다 ‘아 내가 오늘 너무 형편없어 보여서 그런가? ’ 시댁에 갈 땐 제일 후진 옷, 친정갈 땐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더니 딸래미 만날때도 해당되는 말인가? 엄마가 나 말고도 좀 행복하게 만나는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딸파심 같은건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크게 한바탕 웃었다 “엄마 오늘 너무 없어보이니? 너무 급하게 나오긴 했어. 엄마 오늘 너무 피곤했거든” “아니~~혼자 지내는 거보다 남자 친구도 좀 만나고 어? 이런것도 같이 사 먹고 어? 그러면 엄마가 좀 더 즐거울거 아니야” 벌써 엄마의 행복을 걱정할만큼 큰거야? 순간 다른 의미로 너무 안심이었다 아 알고 있구나 이 아이가 알고 있구나 이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얘가 아는지 모르는 지 물어볼 수도 없고 모르는 체 하느라 ‘이건 숨기는 걸까? 배려하는 걸까?’ 잔신경만 쓰고 있었는데 딸래미는 질문하나로 일거에 나의 걱정을 제거해주었다 알고 있구나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을 했고 나에게는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했어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시간들을 무언의 말로 잘 받아들였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다 키웠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 내 몫을 다 마친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엄마가 꼭 아빠랑 살지 않아도 돼 나도 이제 알만큼 알거든 엄마는 멋지게 엄마의 삶을 살아 나도 이제 내 삶의 평범한 시간으로 돌아갔어’ 라는 말로 치환해서 들리기도 했다 엄마의 연애사를 묻는 걸 보니 그렇다면 이제 너랑 나랑 연애 상담 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겠다 곧 너의 남자친구얘기, 짝사랑 얘기, 너의 친구 얘기인 척 말하는 너의 얘기들도... 그런 순간을 상상하니 잠시 짜릿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울 너의 연애 이야기가 처음에 얼마나 아프고 쓰릴지 얼마나 낯뜨거울지 모를, 80살까지 하게 될 너의 이불킥 사연들도 다 들어볼 수 있으려나 그 여러 과정들을 거쳐 성숙한 사람 성숙한 연인이 되어 멋있게 성장할 너의 미래가 순식간에 그려져서 애미는 혼자 몰래 웃었다. 내가 갖지 못한 순간들 엄마와 나누지 못했던 시시콜콜한 나의 짝사랑 이야기, 연애 이야기 언니도 없으니 더더욱 혼자 알아서 해야 했던 멘땅에 헤딩하듯 오롯이 혼자 겪어낸 나의 서툰 연애 스토리들 그런 순간을 너에게 주고 싶다 조잘조잘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복잡다단한 섬세한 감정들에 같이 공감하고 웃고 울어줄 그런 순간들 “엄마는 왜 갈수록 예뻐져?” 너무 느닷없는 솔직한 고백공격을 듣게 될지 몰랐던 오늘은, 행운의 날인가?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인연은 다 지나가고 흘러가는 거니 연연할 필요가 없다라는 얘기를 하다가 “엄마 그만~! 지금 엄마 '꼰모' ” 꼰모 “응? 꼰모가 모야? '꼰'은 꼰대 맞는거 같고...” “꼰대 모먼트” 아!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못 참고 그만 터져버릴 것만 같은 너의 순간이 오면 언제든 엄마를 찾아오렴 너의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엄마가 모두 품어줄게 네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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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나 낳았을때 마음이 어땠어?엄마가 그랬다. “그래도 니 낳고는 서울로 살림 날끼라고 엄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때는 지인~짜 좋았어” 그 말 덕분인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속으로 엄마와 정말로 화해가 된 건. 내가 엄마한테 행복함을 주었다는 사실. 사실은 내가 엄마에게 그렇게 귀찮고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 나를 낳고는 그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살림을 날 거라고 좋아하는 젊은 엄마가 떠올랐다. 그 시점에 태어났을 뿐인 나를 복덩이라고 의미를 덧붙여 더 좋아했을 엄마가 보이는 것 같았다. 곧 이사를 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30대의 젊은 새댁이었을 우리 엄마. 딸이라 그런지 더 예쁘다라고 말하며 웃고, 행복해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그만 황홀해졌다.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도 있었구나. 그래, 어찌보면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이 많았겠구나.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며 마음이 행복하고 흐뭇한 걸 보면... 아빠 때문에 구겨지고 힘들어진 엄마 마음 한편엔 그래도 내가 늘 사랑스럽고 예뻤겠구나. “하이고~니는 좋은 일만 있었어. 시골 내려올 때도 그래. 니 고1 때니까 사춘기 아이가. 어디 다른 시골, 머 강원도나 전라도나 이런데서 온 것도 아니고 서울에 살다가 그 시골로 이사를 했는데 싫다 소리도 안하제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니까 엄마는 고마웠지. 그라고 2학년땐가? 반장도 안 했나. 아, 2학년, 3학년 두 번 했나? 그 봐라~. 전학가가 반장 2년 동안 하기가 쉽나~ 대학도 특차에 한 번에 안 붙었나. 그것도 국립대. 엄마가 하도 국립대 아니면 안 된다고 세뇌를 시켜갖고 니가 그래 안 됐나 ㅎㅎ. 그 때 경북대를 갔어야 되는데. 그 때 넣었어도 아마 됐을거야. 그치? “ “우리가 할머니 집에 모시고 십 몇년을 살았는데 니 방 창문 열면 베란다 아이가. 그 베란다 쓰레기통에 할매 기저귀 땜에 똥 오줌 냄새가 방에 그렇게 진동을 하는데, 니는 참말로 냄새난다고 불평도 한마디도 안하고.... 여름 되마 방에 창문도 몬 닫고 냄새가 진동을 할 낀데도 한 번도 냄새난다고 소리를 안하드라고. 그 때는 참말로 엄마가 미안하드라. 한창 여고생이 깔끔 떨고 유난떨고 할낀데, “ 그 때쯤 목이 메었던 거 같다. 아......엄마가 아는구나. 맞아.... 냄새 많이 났었지. 그래도 그냥 그렇게 사는 건줄 알았지, 난 불평할 꺼리라곤 생각 못 했는데...그래서 난 원망하는 건 없었는데.... 엄만 그런 것도 하나하나 고마웠구나... 추억은 웜홀 같다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때의 시간 그때의 나로 한꺼번에 빨려 들어간다고... 엄마 얘길 들으니 그 때 할머니 기저귀 냄새가 다시 난다. 난 싫지 않았는데. 냄새라고 못 느꼈는데.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좋은데. 난 오히려 그립다 할머니 냄새. 드시는 약 때문에 약간 병원냄새 같았던 할머니 기저귀 냄새. 그 때의 엄마는 대학생인 오빠와 고등학생인 나까지 자식 둘에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그저 살기에 바빴고, 감수성 예민한 그 때의 내게 그 공허한 간극을 메꿔주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있어서 난 그나마 좀 포근했는데.... 그래서 그건 나에게 냄새가 아니라 추억같은건데... “엄마, 나 태어났을 때 엄마 마음이 어땠어?” 라는 질문 하나로 행복한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 나의 탄생이 부모에게 소중했다는 얘기가 나의 자존감을 한꺼번에 쑤욱 올려줬던 것 같다. 나의 존재는 부모로부터 왔으니까. 그 당연한 진리가 부모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서울로 살림을 나 희망에 찼던 젊은 새댁이 신랑과 재미지게 살기까지 했다면, 나는 “재수없다 저리가라.” 라는 모진 말이 아니라 “엄마가 너 낳고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 라는 달콤한 말들을 진작 듣고 살았을텐데, 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였구나... 나 사랑스러운 아이 맞구나! 라는 생각에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오늘따라 목울대가 왈칵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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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할 베짱농담할 베짱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 - 임재범 ‘살아야지’ 中 줄곧 모범생 비슷하게 적당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다 공부는 곧잘했고, 반장도 서너번 해봤고 국립대에 특차로 합격도 해봤다 전공은 딱히 적성에 맞지 않았으므로 결론은 자연스럽게 취집(취직+시집)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와 무난하게 결혼해서 아이도 둘을 낳았으니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로 마무리 되는 삶인 줄 알았다 이렇게 적당히 외줄타기하면서 ‘나’를 연기하며 사는 게 인생인가? 삶은 이게 다인가? 하며 살았다 시련이나 불행은 남의 것인양 곁에 오면 묻기라도 할 것처럼 깊게 공감하지 못한채 사소한 두려움으로 살았다 그럴 수 있었다. 결혼전에는 부모님께 결혼후에는 남편에게 나의 생사여탈권을 적당히 남겨놓고 내 할 일은 적당히 하며 살았으니까 그 때는 누구나 나를 간섭하게 두었다 그 간섭이 싫을 때는 때론 물러나고, 때론 숨으면서도 얼마든지 간섭하도록 말이다 책임만은 면하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친구의 고민상담 같은, 인생의 고통의 장면을 멀리서 보던 때에 느껴지던 두려움은 남편이 혹은 부모님이나 가족 누군가가 해결해 줄 것만 같았고, 누가 도와줄 것 같은 치사함과 닮아 있었다. 세상은 험하고 ‘넌 아직도 모르고 있는 일이 더 많다’ 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 덕분에 내가 그렇게 문제 해결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 잘 알고 있어서 일까? 책임을 모두 내게 가져오는 건 너무 고된 일일 것 같아서 최대한 미루고 미뤄왔었다 삶은 공평하게도 그런 나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막상 내게 닥쳐온 삶의 현장은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한번에 무너질 수가 있어?‘ 였다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왜 내게 이런일이.....라는 문장쯤은 단숨에 떠올랐다 어떤 사건이 누굴 골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 알 나이이면서도 말이다 마치 내게만 닥친 시련처럼 암흑과 적막속에 혼자 갇힌 것 같은 느낌과 공포를 마주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빡빡하고, 하나도 우습지 않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듯 맥박이 빠르게 뛰는 일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울수도, 누군가에게 고민상담하듯 가볍게 말로 꺼낼 수도 없었다. 식욕이 다 뭐란 말인가 그렇게 잘 먹던 내가 입에 뭘 넣고 싶지가 않았다 수시로 멍해지고 죽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덕분에 머리숱은 엉망으로 빠지고 체력이 바닥나서 힘 쓴 것도 없으면서 종일 누워서 끙끙 앓아댔다 내가 웃어도 되는 걸까 라는 자책은 늘 마주했다 죽을것 같은 그 시간들도 결국......... 흘렀다 시간은 감사하게도 애쓰지 않아도 흐른다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던 어느 날, 마음에서 결연하게 떠올랐다 ‘할 수 없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죽지 않고 살거라면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책임지고 살자‘ 오직 내 몫이었다.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함부로 내 짐을 덜어줄 사람을 찾아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너무 고독해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내 짐을 덜어줄 누군가는 없는 일이구나를 완전히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혹여 내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내 짐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내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거구나를 알게 됐다 그 뒤로 내게 들려오는 말들은 이러했다 “당신이 이 문제를 겪는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마음이 놓일 것이다” - 마이클 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 죽어야 될 고민은 없어” - phj (우리엄마다)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 - 임재범 ‘살아야지’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견뎌보니 괜찮더라 살아야 갚지 않겠니 ” - 노라조 ‘형’ “난 상관없어 위험해도 그건 내 몫이야” - 옥주현 ‘나는 나만의 것’ " 시간이 남아 있다 나를 가꾸고 소중함을 찾을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다" - 마이클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이 순간이 곧 삶이니까" - 영화 <언페이스풀> “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유머humor’ ”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어차피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이 시련이 내게만 있는 것 같은 착각 내 시련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 같은 착각 삶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단박에 웃게 해줄 수 있는 그 농담 한 문장 찾아 내는 것이 전부다 그 농담을 던지는 베짱 정도만 장착하면 된다 그러니 그렇게 심각할 것 없다 죽으라는 고민은 없다는 엄마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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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스코칭1. 초등학생은 손이 많이 간다?[맘스코칭1. 초등학생은 손이 많이 간다?] 어른들은 애 키울 때가 그래도 제일 행복한 시절이라는데 난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는 아이 엄마의 요청으로 코칭을 진행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예민한 성격이라 항상 상처받고 오는 걸 보니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엄마로써 아이를 잘 돌보고 키우지 못하는 자기 잘못인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별 어려움 없이 잘만 키우는데 자기는 왜 이렇게 육아가 어려운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아이가 자라며 겪는 과정속 어려움이 모두 본인 탓인 것만 같아 괴로운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자기 스스로 생각할 때 자기 자신이 가장 멋있었던, 자부심이 느껴졌던 사건은 무엇인지?” 한 시간 내내 힘이 없던 눈빛이 달라졌다. 아이 엄마는 결혼 전 작은 사무실에서 일할 때 이야기를 했다. 동료들이 모두 자신을 인정해주었다는 얘기를 시작하는 그녀의 눈빛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어려운 일도 척척 잘 처리했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업무 평가도 늘 고점을 받았다고 했다. 일이 재밌었고 늘 생기가 넘쳤고 힘들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고 했다. 주말이 지나면 출근해서 일 할 생각에 기대가 되고 설레어서 월요병을 이해 못 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니 아무것도 모르겠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전문직에 종사했던 아이 엄마에게 일을 다시 시작해볼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반짝이던 눈빛이 더 빛나기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일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만난 그녀는 남편과 나눈 긍정적인 대화를 들려주었다. 사실은 남편도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감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고, 남편 스스로 육아에 더 시간을 쓰고 아내의 일을 적극 외조하기로 약속했고 그녀를 응원해주었다고 했다. 남편이 동의 해줄지 몰랐다면서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일을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코칭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를 키우며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엄마들은 고민에 빠진다. 아이가 문제일까? 나의 대답은 ‘아니다’ 이다. 양육자가 스스로를 가두어 놓은 신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실제로는 더 많다. 초등학생 아이는 손이 많이 간다는 신념 이러이러한 건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서 못 할 거라는 신념 엄마가 자신의 편함과 행복을 추구하면 아이에게 뭔가 미안하다는 신념 등등...... 아이를 케어하면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러나 아이를 케어하는 동안 매일매일 자신의 무능을 직면하는 엄마들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모성을 발현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나의 역할에 구속된 채로 불행을 받아들이고 아이에게는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 과연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역할 이전에 나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삶을 사는 것이 과연 나쁜 일일까? 난 애기엄마를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참 젊다, 참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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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휴대전화를 주는 이유와 부모의 역할자녀에게 휴대전화를 주는 이유와 부모의 역할 2023년 7월 10일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휴대전화를 아이 손에 쥐여줬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휴대전화로 서로 연락을 하고 있다.집 전화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아이와 밖에서 연락하려면 휴대전화가 필수였다.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주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이유와 용기가 필요했다. "oo아, 이제 너도 휴대전화가 필요한 시기가 왔어. 엄마나 친구들과 소통하고 연락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알려줄게. 이 휴대전화로 게임도 할 수 있고 만화도 볼 수 있어. 보통 엄마들이 걱정하는 해로운 영상을 볼 수도 있어. 그리고 엄마는 너를 단속하거나 감시하지 않을 거야. 이건 네 소유니까 네가 사용하는 시간과 방법은 네가 정해. 처음에는 마음껏 사용해봐. 재밌을 거야. 다양한 기능들도 찾아보고, 익숙해지면 진짜 재미있을 거야. 이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것은 네 마음대로야. 이 휴대전화로 oo이가 원하면 멀리 있는 도서관의 책을 찾아볼 수도 있고, oo이가 원하면 하버드 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도 있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는 것보다 더 좋을 거야." 아이는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다. 다루는 방법을 익히고 다양한 기능을 탐색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기왕 게임을 하고 싶다면 왕을 깨버리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친구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으니까. 아이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휴대전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년 후, 아이는 4학년이 되었다. 아이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휴대전화를 보고있었다. 뒤에서 슬쩍 보았는데, 아이는 수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궁금해져서 물었더니, 아이는 알려준 방법대로 휴대전화를 활용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고작 9살이던 아이는 엄마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시대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부모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발전의 도움으로 자녀를 더 넓은 세상과 연결시킬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모는 여전히 자녀를 돌보고 가르치며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오히려 시대가 바뀜에 따라 부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도와줌으로써 성공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제 막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