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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그런 때

기사입력 2024.05.1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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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도무지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고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다

     

     

    내가 선택했든

    삶이 나를 내동댕이 쳐 버려졌든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느낌

    정하는대로 갈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없는

    아직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그런 때

     

     

    그럴 때 만나는 누군가는 그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진다

    그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에 내 삶에 등장한 동갑내기 친구는

    복잡다단하게 나의 감정들을 건드렸다

     

     

    처음엔 수치심이었다

     

     

    나는 너무 초라해

    나는 너무 어리석어

    그러니 나는 사랑스럽지 않아

    차라리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겠어

     

     

    수치심을 마주하는 동안에는 매순간 11초가 매우 처절해진다

    실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 울음이 터지고 세상이 잿빛이다

    그리고 서럽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

    이건 내 탓이 아니야

    수도 없이 부정하고 방어한다

    나를 보호하려고 내 안의 또다른 내가 기를 쓰고 나선다

    인간의 무의식은 여기가 마지노선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죽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다음은 열등감이었다

     

     

    나는 왜 저렇게 못했을까?

    나는 왜 하지 않았었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동안 뭘 했지?

     

     

    수치심으로 자존감이 무력해지고

    시간이 지나 조금 살만해지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열등감으로 넘어간다

    열등감을 마주하는 순간은 매우 낯뜨겁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고 금새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분하다

    수치심과 비슷한 것 같지만 매우 다르다

    적어도 죽고 싶다는 아니다

     

     

     

     

    그 다음은 외로움이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것밖에 안되었네

    있는 그대로의 진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수치심과 열등감을 지나면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어느정도는 받아들인다

    노력해서 될 일과 아닌 일이 있다는 것쯤 이해하게 된다

    이토록 시시한 나와 악수하고 화해도 한다

    그리고 쓸쓸하다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타인을 찾는다

    제발 나를 사랑해 달라고

    당신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면

    그러면 마치 나의 이 내면의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사랑하고 , 열심히 일하고 , 열심히 살았다

     

     

    외로움은 그렇게 해결되는 감정이 아니었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때로 매우 길어지고

    혼자보다 둘이 더 외롭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살았던 이유는

    온갖 알은채를 했지만

    정작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남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길러낸 적도 없고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까?‘

    라는 생각으로 일도 하고 사랑도 했겠다.......

     

     

     

     

    자애(愛) 명상을 배웠다



    우선 편안하게 호흡하는 것을 나에게 허락해 주어야 한다

    편안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한 손을 가슴에 얹은 후에

    천천히 그리고 작은 소리로 따라 해보는 것이다

     

     

    "부디 내가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부디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부디 내 몸이 건강하기를"

     

     

    수박과 바나나 한송이를 사주고 간 다음날

    그 친구는 나의 삶에서 퇴장하고 자기 삶에 충실하겠노라고 선언했다

     

     

    하필 바나나였을까?

    바나나....

    바나나라니....

    허기진 배도 채우고

    외로움도 달래보라는 뜻이었나 짐작하고 한 번 피식 웃어본다

     

     

    그 친구가 나를 좀 더 사랑해주고

    좀 더 나를 예뻐하고 표현해주기를 바라던 끝에서

    나는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어서

    이렇게 바라고만 있나 생각해보니

    내가 내어줄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부디 안녕하기를 빌어주고 바라는 것 뿐이었다

    그건 멀리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편히 이 친구를 놓쳐주었다

     

     

     

     

    사소한 다툼 끝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에 발끈했지만

    나의 잘못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함부로 외로울 수 있는 상황에 나 스스로를 던져놓고

    외로움 따위 의연하게 견딜 수 있다고 믿은 나의 어리석음이었다

     

     

     

     

    내 안의 낯 뜨거운 온갖 감정들을 들쑤셔놓은 그 친구는

    나쁜 놈이라고 치부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망망대해에 혼자 던져진 이 때의 나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기도 하였다

     

     

    내 삶의 가장 바닥이라 믿고 싶은 지금의 순간들을 지켜봐주어서 감사한

    아직은 더 살만하다고 믿게 해준 용기를 주어서 감사한

    부족한 나를 호되게 야단치지 않고 늘 생각할 시간을 주어서 훌륭한 친구였다

     

     

    자비 명상을 그 친구에게도 보내본다

     

     

    "부디 당신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부디 당신의 마음이 편안하기를"

    "부디 당신의 몸이 건강하기를"

    "부디 당신이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가 나의 기도처럼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면

    내심 그건 다 내 기도 덕이라는 위안을 할 수 있는 때가

     

     

    부디 오기를

     

     

    thank u, next

     

     

     

    블레스 파스칼.png블레즈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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